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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경제위기와 중앙은행의 반응

대공황과 글로벌 경제, 중앙은행의 국제적 영향

by 피터까똘 2025. 2. 18.

   

 

   대공황(Great Depression)은 단순한 경제 위기를 넘어서 근본적으로 전 세계 경제 시스템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킨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1929년 월스트리트 주식시장의 붕괴를 시작으로 하여 도미노와 같이 미국 경제 전체가 무너졌고, 이는 곧바로 전 세계적인 금융 혼란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가 단순히 시장 경제의 실패로만 설명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우리는 던져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나온 과거의 발자취를 알고 있는 현시대의 사람으로서 중앙은행들의 정책 결정이 대공황의 전개와 확산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분석하여 보면 글로벌 금융 시스템이 현재까지도 어떠한 영향을 받고 있으며 지금은 어떠한 원리로 작동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대공황 당시 중앙은행의 국제적 영향과 그 결과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WALL Street
월스트리트

 

 

 

목차 : 1. 중앙은행의 금본위제와 유동성 부족, 대공황을 심화시킨 원인

          2. 중앙은행 간 정책 조율 실패로 글로벌 확산의 가속화에 따른 국제적 영향

          3. 보호무역주의와 중앙은행의 소극적 대응

          4. 대공황 이후의 변화, 중앙은행의 역할 재정립

 

 

 

 

[1.중앙은행의 금본위제와 유동성 부족, 대공황을 심화시킨 원인]

   대공황이 시작되기 전, 세계 경제는 금본위제(Gold Standard)하에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이는 각국 통화가 금으로 교환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하지만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금융 시스템이 불안정해졌고, 많은 국가가 금 유출을 막아서 금본위제를 유지하려는 정책으로 금 보유량을 유지하기 위해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올리고 통화 공급을 제한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정책과 영국은행(Bank of England)의 금본위제 집착이 글로벌 경기 침체를 더욱 악화시킨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금본위제의 역사(Gold Standard)

17세기 이후 유럽에서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금과 은을 기반으로 한 통화 시스템이 발전을 이루게 되었음

1717년 영국의 아이작 뉴턴(Sir Isaac Newton)이 영국의 조폐국장이었는데, 금과 은의 가치를 잘못된 비율로

    (1:15.2) 설정하여 금이 화폐의 중심이 되는 계기가 되었음

19세기 동안 영국이 세계적인 경제 강국이 되면서 파운드-금본위제가 글로벌 표준이 되었으며 독일(1871),

   프랑스(1878), 미국(1879), 일본(1897)이 금본위제를 도입하는 데 이 시기를 클래식 금본위제(Classical

   Gold Standard)라고 불렸음

대공황 후 금본위제가 폐지되기 시작하여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새로운 국제 통화 체제가 필요해짐으로 1944

    미국 주도로 브레튼우즈체제(Bretton Woods System)가 출범하는데, 이 체제는 미국 달러만 금과 교환 가능하고

    다른 통화들은 달러와 연동이 되는 체제로 금 본위제에서 달러 본위제(Dollar Standard)로 전환이 됨

미국은 베트남 전쟁과 재정적자가 누적되면서 금1온스=35달러로 유지하던 고정환율에서 변동환율제(Floating

    Exchange Rate)로 전환이 되는 데 이것을 1971년 닉슨 쇼크(Nixon Shock)라고 하고 이로써 금본위제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됨

현재는 금을 가치 저장 수단(Safe Haven Asset)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

 

 

 

 

[2.중앙은행 간 정책 조율 실패로 글로벌 확산의 가속화에 따른 국제적 영향] 

   대공황 당시 각국 중앙은행들은 자국 시장의 금융 안정만을 우선시하고, 국제적인 협력을 등한시하여 더욱더 어려운 시기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1931년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은행들이 연쇄적으로 붕괴하면서 유럽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았지만,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주요 중앙은행들은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에 나서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 연준은 국제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달러 유동성을 제공하지는 않고 대신, 보호주의적 금본위제 정책을 고수하며 글로벌 경기 침체를 더욱 심화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현대 경제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제공하는데, 글로벌 금융 위기 시 중앙은행 간 공조가 필수적인 요소임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공황 당시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결정의 배경에 대한 포스팅 목차 3번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금융

   시스템 불안과 은행 폐쇄 참조

금본위제의 장점과 단점

장점은 환율이 안정적이고 인플레이션을 방지(정부 마음대로 돈을 찍을 수 없음)하며 신뢰성 높은 통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됨

단점은 경제 위기 시 대처가 어려움(유동성 공급에 어려움), 금의 공급이 경제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각국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부족함

 

 

 

 

[3.보호무역주의와 중앙은행의 소극적 대응]

   대공황이 심화하면서 각국 정부는 자국 산업만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채택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30년 미국의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입니다. 이 법안은 수입 관세를 대폭 인상하여 미국 내 산업을 보호하려는 목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전 세계 무역량이 60% 이상 감소되어 국제 무역을 위축시켰으며 영국프랑스독일 등도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블록 경제(Block Economy)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중앙은행들의 대응 또한 미흡하기만 했습니다. 미국 연준은 국내 경제가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긴축 통화 정책을 유지했고, 유럽 중앙은행들도 금본위제 유지에 집착하여 금리 인하와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을 채택하지 않았고 이러한 정책들은 결국 대공황을 더욱 장기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

하원의 월리스 스무트(Willis Smoot)와 상원의 리드 홀리(Reed Hawley)가 주도하여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하는 법안으로 허버트 후버대통령의 서명으로 법안이 발효됨

20,000개의 수입품의 평균 관세율이 40% 이상 상승됨

추지는 미국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곡물, 축산물 등의 관세를 높이려는 법안이었으나 논의 과정에서 제조업

   제품까지 포함되어 거의 모든 수입품에 높은 관세가 부과되었고 다른 나라들은 보복관세(Retaliatory tariffs)

   맞대응을 하여 무역 전쟁이 촉발됨

④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하여 무역협정법(Reciprocal Trade Agreements Act, RTAA)을 통해 양자 간 무역 협정을

    체결하고 관세를 점진적으로 낮추기 시작하여 자유무역을 회복함

이후 1947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1995WTO(세계무역기구)등의 자유 무역 체제가 등장

    하게 됨

 

 

 

 

[4.대공황 이후의 변화: 중앙은행의 역할 재정립]

   대공황의 심각성을 경험한 각국은 중앙은행의 역할을 재정립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변화는 1933년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단행한 금본위제 폐지와 뉴딜 정책(New Deal)을 들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연준은 유동성을 적극 공급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어서, 이후 중앙은행의 역할이 단순한 통화 관리에서 경제 안정과 금융 위기 대응으로 그 역할이 확대되었습니다. 또한,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_별표의 금본위제 역사 참조) 도입을 통해 국제 금융 시스템이 보다 유연한 방향으로 전환되었으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 같은 국제 금융 기구들이 출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공황은 중앙은행의 역할이 단순한 통화 정책 집행을 넘어선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중앙은행들은 금본위제 유지와 자국 중심적 정책으로 인해 위기를 악화시켰으며, 국제적인 협력 부재가 경기 침체를 장기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수를 계기로 이후 중앙은행의 역할이 변화하였고, 글로벌 금융 위기 대응 능력이 강화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경제 위기 시 중앙은행들의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고려할 때, 대공황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향후 글로벌 경제가 새로운 위기에 직면했을 때, 각국 중앙은행들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보다 유기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 다음 포스팅은 대공황을 통해 본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부족입니다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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