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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경제위기와 중앙은행의 반응

대공황과 연방준비제도, 정책 결정과 그 결과

by 피터까똘 2025. 2. 21.

 

 

1929년 대공황은 미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과 과도한 신용 팽창으로 인해 발생했습니다. 연방준비제도(Fed)1913년 창설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경제 위기에 직면했고, 그 대응 방식은 후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달리, 연방준비제도의 대응은 단순한 통화 긴축 정책을 넘어 보다 복합적인 정책 실패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앤드류 멜런 재무부 장관
앤드류 멜런(Andrew Mellon)

 

 

 

 

목차: 1.연방준비제도의 초기 대응과 정책 실패

         2.연방준비제도 내부의 정책 갈등

         3.공개적으로 다뤄지지 않은 연방준비제도의 전략적 고려

         4.대공황 이후 정책 변화

 

 

 

 

[1.연방준비제도의 초기 대응과 정책 실패]

   (1)통화 공급 축소와 신용 경색

        대공황 발발 직후, 연준은 유동성 위기에 빠진 은행들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1930

        에서 1933년 사이 은행 폐쇄가 급증했으며, 이에 따라 화폐 공급이 급격히 감소하였으므로

        일반적인 정책으로 볼 때에 연준은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공급해야 했으나, 당시 정책 결정

        자들은 오히려 통화량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2)금본위제 유지 정책과 디플레이션

        연준은 국제 금본위제를 유지하기 위해 금 보유량을 방어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를 위해

       금리 인상을 단행했으며, 이로 인해 통화 공급이 더욱 위축되었으며 그 결과, 디플 레이션이

       심화되었고, 기업과 가계의 부채 부담이 증가하면서 소비와 투자 활동이 크게 위축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디플레이션(deflation)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경제 현상으로 통화량 감소, 수요 부족, 경기 침체와 연관이 있으며 다음과 같은

    원인으로 발생을 합니다.

    1) 총수요 감소로 소비자와 기업이 지출을 줄이면서 수요가 감소

    2)통화 공급 축소는 중앙은행이 통화하량을 줄이거나 대출이 위축되면서 유동성의 감소

    3)생산성 증가는 생산 비용이 낮아지면서 제품 가격이 자연스럽게 하락하는 현상

    4)부채축소(Debt Deflation)는 기업과 가계가 부채를 줄이기 위해 소비를 억제하면서 경제 전체적으로 수요가

       감소

    5)자산 거품 붕괴는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소비 심리가 위축되는 현상

   •이러한 디플레이션로 다음과 같은 영향이 발생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1)실질 부채 증가로 물가가 하락하면 명목 소득이 감소하지만 부채는 그대로 유지되어 실질 부채 부담이 더욱더

       커지는 현상

    2)소비 및 투자 감소로 제품의 가격이 계속 떨어질 것으로 예상을 하여 소비와 투자를 미루게 되는 현상

    3)경제 성장의 둔화로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어 임금 하락과 실업률 증가로 이어지는 현상

    4)금융 시스템의 위기로 기업과 가계가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여서 금융 시스템의 불안전성이 커지는 현상

 

 

 

 

[2.연방준비제도 내부의 정책 갈등]

   대공황 당시 연준 내부에서도 정책 방향을 둘러싼 갈등이 존재하기는 했습니다. 일부 지역 연준 은행들은 과감한 유동성 공급을 주장했으나, 뉴욕 연준과 연준 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는 신중한 접근을 선호했습니다. 특히, 앤드류 멜런(Andrew Mellon) 재무장관은 "시장 정화를 위해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모두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여 통화 긴축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시장의 자연적인 회복을 기대하는 입장이었으나, 결과적으로 경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앤드류 멜런(Andrew Mellon) 재무장관

   미국의 금융가, 산업가, 자선가로 1921부터 1932년까지 3명의 대통령(하딩, 쿨리지, 후버)밑에서 재무장관

   (Secretary of the Treasury)를 역임한 인물로 공급 측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 기반으로 한 감세정책과

   정부 지출 축소를 주장했던 인물로 1920년대에는 미국 경제 성장에 기여했지만, 1929년 대공황 발생 이후로는

   비판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1921년에서 1929년 사이 최고 소득세율을 73%에서 24%로 대폭 인하하고 법인세 및 상속세도 감면하여 기업과

   부유층의 투자 활성화를 유도하여 광란의 20(1920년대 경제 호황)을 주도하였으며 1차 세계대전 이후 260

   달러에 이르렀던 국가 부채를 160억 달러로 축소하여 감세와 균형 재정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대공황(Great Depression)이 시작되어서도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을 거부하며 경제악화를 방치하였으며

   1920년대 추진한 정책들로 불평등은 심화되고 금융 규제 완화로 주식 시장의 과열을 초래하여 대공황(Great

   Depression)이 일어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멜런의 정책이 너무나

  극단적이라고 판단하여 1932년 재무장관에서 해임을 하고 영국 대사로 임명을 하였습니다. 멜런의 감세 정책은

  공급 측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 기초가 되어 레이건 정부가 계승을 하기 도 합니다.

  다음은 앤드류 멜런(Andrew Mellon) 재무장관이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1)부자에게 세금을 덜 부과하면 경제가 성장하고 결과적으로 모든 계층이 혜택을 본다.

   2)정부는 민간 경제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 신봉자

   3)경제는 자연적으로 조정될 것이며, 정부가 개입하면 안 된다.

   4)부패한 자본을 청산하라(Liquidate labor, liquidate stocks, liquidate farmers, liquidate real estate) - 노동자,

      주식, 농민, 부동산 시장이 붕괴되어도 시장이 스스로 균형을 찾게 간섭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3.공개적으로 다뤄지지 않은 연방준비제도의 전략적 고려]

   (1)대형 은행과의 관계

.      일반적으로 연준의 정책 실패가 단순한 무능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되지만, 다른 시각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당시 연준이 대형 은행들과 협력하여 특정 금융기관을 살리고 중소 은행들을 정리하려 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것은 금융 시스템의 장기적인 안정성을 고려한 조치였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대기업 중심의 금융 구조를 더욱더 공고히 하여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준이 협력한 당시의 대형 은행들

   • JP모건 & 컴퍼니(J.P. Morgan & Co.)

   • 퍼스트 내셔널 시티 뱅크(First National City Bank, 현재의 Citibank)

   • 체이스 내셔널 뱅크(Chase National Bank, 현재의 JP모건 체이스)

   • 국립 은행(National Bank of Commerce)

구제 대상이 된 금융기관(특정 금융기관)은 뱅크 오브 유나이트 스테이츠(Bank of United States) 1913년에

   설립되어 뉴욕지역에서 많은 소매 고객을 보유한 은행임

 

(2)산업 구조 조정을 위한 선택적 개입

     연준이 일부 산업의 부채를 조정하고자 다른 산업을 방치하는 형태로 개입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철강 및 철도 산업과 같은 전략적 산업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유동성 지원이 이루어진 반면, 중소 제조업이나 농업 부문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었습니다. 이는 연준이 단순한 금융 정책 집행 기관이 아니라, 경제 구조를 조정하는 역할도 수행했음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대공황 당시에 미국의 전략적 산업

   1)철도는 미국 경제의 핵심 인프라로 철도 회사들의 채무 불이행을 막기 위해 연준과 재건 금융공사

      (Reconstruction Finance Corporation, RFC)를 설립하여 유동성을 공급

   2)농업 부문에서도 대공황으로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자 연준과 농업신용공사(Agricultural Credit Corporation,

       ACC)를 통해 대출이 이루어졌지만 이것도 직접적인 개입이 아닌 정부 차원의 대출 프로그램이었음

   3)은행 및 금융 부문은 (1)항의 대형 은행과의 관계를 참조

 

 

 

 

[4.대공황 이후 정책 변화]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한 후, 연방준비제도의 정책 기조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은행 폐쇄 조치(Bank Holiday) 이후에 은행 시스템이 재편되었으며, 연방준비제도는 본격적인 통화 확대 정책을 시행하게 되었으며 금본위제에서 부분적으로 이탈하면서 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의 협력 아래 적극적인 경기 부양 정책이 추진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연준의 직접적인 개인은 약화되었고, 정부의 경제 개입이 강화되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존재합니다.

 

 

 

 

 

   

대공황 당시 연방준비제도의 정책 실패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당시의 경제 관점과 정치적 고려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습니다. 특히, 금융 시스템 내 권력관계와 산업 구조 조정이라는 측면에서 연준의 결정이 단순한 경제적 결과만을 초래한 것이 아니라, 미국 경제의 장기적인 방향성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이는 현대 중앙은행 정책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며, 금융 위기 발생 시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한 보다 면밀한 분석이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 다음 포스팅은 대공황과 금본위제, 중앙은행의 정책적 선택입니다.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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