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는 미국 역사상 ‘광란의 20년(Roaring Twenties)’이라 불리는 호황기로 자동차 산업의 폭발적 성장, 전기 보급 확대, 주식시장 붐 등으로 미국 경제는 전례 없는 고속 성장을 구가했습니다. 하지만 이 번영은 과도한 신용 팽창과 금융 투기 위에 쌓여 있었던 성장으로 결국 1929년, 뉴욕증시의 붕괴되면서 거대한 경제 위기의 서막이 열리게 되었는데, 그 이후 미국은 어떤 대응을 했을까? 그리고 이 초기 대응이 왜 실패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이 번 포스팅의 핵심입니다. 그러면 지나온 과거의 역사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고찰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목차 : 1.관세 정책,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등장
2.연준의 초기 정책인 긴축과 그 치명적인 실책
3.통화 정책 실패에 대한 프리드먼의 분석
[1.관세 정책,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등장]
경제 위기 앞에서 정치권은 산업 보호를 외쳤는데, 이때 채택된 것이 바로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 1930)입니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의 충격 속에 수많은 실업자가 발생하고 기업이 도산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치권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면 고용이 유지되고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를 내세워 20,000개 이상의 수입 품목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 시켰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다른 나라들도 즉각 보복 관세로 대응했다는 점입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미국에 대한 수출품에 대해 자국 내 장벽을 높였으며 결과적으로 전 세계 무역량은 1930~33년 사이에 2/3 수준으로 급감하게 됩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자국 산업을 살리기보다는 글로벌 교역을 단절시켜 오히려 미국 기업의 수출길을 차단했고, 해외 투자도 줄어들었으며 미국 농산물 시장도 큰 타격을 입었고, 이미 무너지고 있던 경제는 더욱 깊은 침체에 빠졌들게 하였습니다.
[2.연준의 초기 정책인 긴축과 그 치명적 실책]
경제가 붕괴하는 시점에서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의 대응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놀랍게도 연준은 오히려 통화 긴축을 강화했습니다. 1920~30년대 초까지 미국은 금본위제에 묶여 있었는데, 금본위제는 통화 발행량이 금 보유량에 연동되어야 하므로 위기 시에도 무제한적인 유동성 공급이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세계 금융 불안으로 금 유출이 시작되자, 연준은 이를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선택을 하였고 이러한 금리 인상은 내수 경기를 더욱 위축시키고, 신용경색을 유발하게 됩니다.
그 결과 당시 수천 개의 중소 은행들이 파산했지만, 연준은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 대신 시장 조정에 맡기려는 태도를 유지했으며 이는 대규모 디플레이션 압력을 가속화시키고, 대중의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대공황 전의 경제 상황과 그 원인 분석에 대한 포스팅 참조
미국 중앙은행의 정책 실패와 대공황의 시작에 대한 포스팅 참조
[3.통화 정책 실패에 대한 프리드먼의 분석]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후에 이를 “연준의 가장 치명적인 실책”이라 평가했습니다. 그는 "대공황은 통화량 수축과 연준의 수동적 대응이 만든 인재"라고 단언을 하기도 합니다. 즉, 단순한 외부 충격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 대응이 위기를 ‘대공황’으로 키운 것이라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평가에 대한 교훈은 다음과 같이 명확하다고 볼 수 있으며 지금도 되풀이 되고 있는 우리의 경제 상황을 보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반복되는 역사를 통해 우리의 나갈 방향을 올바르게 선택하여야 합니다.
- 관세 인상은 수입 억제만이 아니라 세계 경제의 단절을 유도한다.
- 금본위제와 고정통화제도는 중앙은행의 위기 대응 능력을 심각히 제약한다.
- 통화 긴축은 위기 대응의 해법이 아니라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
결국 이 두 가지 정책 실패가 결합되었기에, 대공황은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닌 세계경제 붕괴 수준의 위기로 전개되었던 것입니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2006)
미국의 경제학자이며, 20세기 자유주의 경제 사상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시장 자유를 강조하는 시카고 학파(Chicago School of Economics)의 중심 인물입니다.
케인즈주의가 정부의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 조절을 강조한 반면, 프리드먼은 경기 변동의 주요 원인은 통화량(Money Supply)라고 주장을 하며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어디서나 통화적 현상"이라고 한 그의 유명한 말로 대변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경기개입보다는 통화 공급의 점진적이고 예측 가능한 관리를 주장했는데, 매년 일정 비율로 통화량을 증가시키는 방식입니다. 자유 시장이 자율적으로 균형을 맞추며, 정부 개입은 오히려 시장을왜곡한다고 주장을 하였으며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사이의 장기적인 상충 관계를 부정하며 자연 실업률 이론(Natural Rate of Unemployment)를 주장한 인물입니다.
1980년대 레이건 정부와 대처 정부가 프리드먼의 사상을 실제 경제 정책에 반영하여 공급측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과 통화주의적 접근 방식이 시대의 큰 흐름이 되었으며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채택하는 근간에도 그의 이론과 사상이 일정 부분 반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자유시장주의는 소득 불평등 확대, 사회안전망 약화로 이어졌으며 개발도상국에 도입된 구조조정 정책인 쇼크요법은 사회적인 부작용을 낳기도 했습니다.
경제 위기의 파도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충격의 강도는 정책 결정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대공황의 초반기, 미국은 보호무역이라는 단기적 인기 정책과, 금본위제에 얽매인 중앙은행의 수동적 대응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했으며 그 결과는 전 세계적인 재앙이었습니다. 역사는 경고합니다. 위기 앞에서의 정책 결정은 더 치밀하고, 더 유연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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