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부족
유동성 부족에 따른 은행의 도산

 

 

 

   금융기관의 붕괴는 단순한 기업의 도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금융 시스템 전체에 충격을 주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특히, 대공황과 같은 경제 위기 시기에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더욱더 중요해집니다. 금융기관이 도산하면 신용 경색이 발생하고, 이는 실물 경제에 연쇄적인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연쇄반응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대공황을 중심으로 금융기관의 붕괴와 이에 대한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부족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하여 보고, 이를 바탕으로 현대 경제에서 주는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목차 : 1.금융기관의 붕괴와 유동성 위기

          2.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부족과 경제 악화

          3.금융기관과 중앙은행의 대응 한계

          4.현대 금융위기에 대한 대공황 당시 중앙은행의 교훈

 

 

 

 

[1.금융기관의 붕괴와 유동성 위기]

   대공황 당시 미국에서는 수많은 금융기관이 연쇄적으로 도산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경기 침체 때문이 아니라,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은행들은 예금 인출 사태에 직면했지만, 연방준비제도는 충분한 유동성을 제공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금융기관들의 신뢰도가 급격히 하락했으며 이러한 상황은 금융시장의 붕괴를 더욱 가속화시켰습니다.

 

금융기관의 신뢰도 평가(Financial Institution Credibility Assessment)

   금융기관의 안전성과 건전성을 평가하여 사전에 위험을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은행, 투자회사, 보험사,

   연기금, 핀테크 기업 등이 대상이 되고 금융기관의 신뢰도 평가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재무 건전성(Financial Soundness)

       자본 비율, 부채비율, 유동성 비율, 순이익률 등으로 평가를 받음

       BIS 자기자본비율(BIS Capital Adequacy Ratio)은 국제결제은행(BIS)이 은행에게 최소한의 자기자본비율을

       유지하도록 요구하는 것

   ②신용평가 등급(Credit Ratings)

       신용평가 기관(S&P, Moody’s, Fitch)이 금융기관의 신용도를 등급으로 평가하는 것임

        Aaa~Aa(최고 등급) : 매우 안정적인 금융기관

        A~Baa (적격 등급) : 일반적으로 안전하지만 경기 상황에 따른 변동성이 있음

        Ba (투기 등급) : 고위험군

   ③유동성 & 지급능력(Liquidity & Solvency)

       예금 대비 대출 비율(Loan-to-Deposit, LDR)로 평가되며 현금 보유량과 단기 금융상품 비율입니다.

   ④리스크 관리 수준(Risk Management & Compliance)

       2008년 금융위기 후에 글로벌 금융 규제가 강화되었어(바젤III 도입) 은행의 자본 및 유동성 기준을 대폭 강화

   ⑤평판 & 신뢰도(Reputation & Public trust)

       2016년 웰스파고(Wells Fargo) 스캔들, 가짜 계좌 개설로 신뢰도가 하락하여 고객의 대규모 이탈이 일어난 것

       처럼 평판과 신뢰도도 중요한 요소임

 

 

 

 

[2.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부족과 경제 악화]

   중앙은행이 유동성 공급을 충분히 하지 못한 것은 대공황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연방준비제도는 금본위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과감한 유동성 공급을 주저했고, 그 결과 신용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었으며, 이는 기업과 개인의 대출 기회를 감소시키고 소비 및 투자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결국 실물 경제는 더욱 악화하였고, 실업률이 폭등하며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3.금융기관과 중앙은행의 대응 한계]

   대공황 당시 금융기관들은 중앙은행의 정책을 신뢰할 수 없었으며, 이에 따라 자산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오히려 자산 가격 폭락을 초래했고,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중앙은행은 이러한 상황을 방관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이는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은행의 자산 매각 유형(Types of Bank Asset Sales)

   은행의 자산 매각 방식은 유동성과 리스크, 가격 등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됨

   ①개별 자산 매각(Direct Asset Sales)

       대출채권 매각(Loan Sales) - 부실 대출을 제3자에게 매각하는 방식

       부동산 매각(Real Estate Sales) - 은행이 보유한 담보 자산을 시장에 매각하는 방식

   ②유동화(Securitization, 증권화)

      은행이 보유한 대출 자산을 유동화 증권(ABS, MBS)으로 전환하여 매각하는 방식

       MBS(Mortgage-Backed Securities)는 주택저당증권이라 함

       ABS(Asset-Backed Securities)는 자산유동화증권이라 함

   ③포트폴리오 매각(Portfolio Sales) : 여러 개의 자산을 묶어 일괄 매각하는 방식

   ④합병 & 인수(mergers & Acquisitions, M&A)

   ⑤담보 대출(Collateralize Borrowing) - 보유 자산을 담보로 맡기고 대출을 받는 방식

 

 

 

 

[4.현대 금융위기에 대한 대공황 당시 중앙은행의 교훈]

   2008년 금융위기에서 중앙은행은 대공황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신속하게 유동성을 공급했으며 이러한 대규모 양적 완화 정책의 시행은 금융기관들의 신용 경색을 완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대공황과 2008년 금융위기의 비교를 통해, 중앙은행의 역할과 금융기관의 신뢰 회복이 경제 위기 극복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예로, 앞에서 살펴본 은행의 자산 매각 방식에서 2008년 금융위기(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유동화 증권을 발행하여 위기를 넘기고자 하였으나 유동화가 이루어지면서 유동화 증권 속에서 어떤 것이 투기 등급이고 어떤 것이 투자 적격인지 구분을 할 수 없게 되어 리스크가 다른 은행들로 쉽게 전이가 되는 위험 요소가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금융기관의 붕괴는 단순한 기업 도산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 전체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대공황 당시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부족은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었습니다. 이를 교훈 삼아, 현대 금융 시스템에서는 신속하고 효과적인 중앙은행의 대응이 필요하며, 장기적 시각에서 금융 안정성을 유지하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결국,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과 금융기관 간의 신뢰 구축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서로 간의 신뢰를 잃어버리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으며 실물 경제는 지속해서 악화되어 금융기관은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게 됩니다. 정부와 시장과 금융기관 3자는 지속적으로 서로의 신뢰를 확인하고 서로가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지 않으며 현재의 금융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 다음 포스팅은 대공황 이후 미국 중앙은행의 정책 변화입니다.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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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9년 대공황은 금융 시스템의 구조적 약점과 중앙은행의 정책적 실책이 결합하여서 더욱더 가속화되고 심화하였습니다. 대공황을 단순한 주식시장 붕괴로만 해석하는 것은 금융 시스템의 복합적인 문제들을 간과하여 단순하게 보는 것입니다. 특히,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부족은 금융시장의 경색을 초래하여, 경제 회복을 더욱 더디고 어렵게 만들어간 핵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보아야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대공황 당시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실패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현대 금융 위기에서 어떤 교훈을 줄 수 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대공황과 유동성
달러_유동성 공급 부족

 

 

 

 

목차 : 1.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정책 실패

          2.중앙은행의 유동성 부족과 금융기관의 연쇄 붕괴

          3.중앙은행의 금본위제와 유동성 공급의 제한

          4.현대 금융위기에 대한 시사점

 

 

 

 

[1.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정책 실패]

   대공황 시기의 연방준비제도(Fed)는 금융 시스템이 위기에 빠졌을 때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중앙은행은 금본위제를 유지하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통화량 증가가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빠져서 적절한 유동성 공급을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은행 간 신용경색이 심화하여서 대규모 은행 도산을 발생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신용 경색만의 문제가 아니라 실물 경제에도 충격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연방준비제도(Fed): 대공황에서 중앙은행의 역할과 그 한계에 대한 포스팅 중 목차 1번 중앙은행의 금융 안정

   정책과 그 한계 참조

금본위제의 장점과 단점: 대공황과 글로벌 경제, 중앙은행의 국제적 영향에 대한 포스팅 중 목차 2번 중앙은행 간

   정책 조율 실패로 글로벌 확산의 가속화에 따른 국제적 영향 참조

 

 

 

 

[2.중앙은행의 유동성 부족과 금융기관의 연쇄 붕괴]

   1930년대 초반부터 미국 내 수많은 은행이 도산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단순한 유동성 위기가 아니라 시스템적 금융 위기의 전조현상이었습니다. 중앙은행이 적절한 유동성을 공급하지 못한 탓에 금융기관들은 서로 간의 신뢰를 잃었고, 이것은 금융 시장에서 심각한 유동성 경색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지방 은행들이 먼저 도산했으며, 점차 대형 은행들까지 영향을 받으면서 금융 시스템 전체가 마비되는 양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다시 대출 축소와 소비 및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어서 실물 경제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Bank Failures(은행의 대규모 도산)

   ①1920년대 미국 은행들은 농업과 부동산에 대한 대출을 과다하게 제공했고, 192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 농산물

      가격 폭락과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대출의 부심화가 커지면 Bank Run이 시작되어 은행들이 도산하게 됨

   ②193011월 켄터키주의 Bank of United States가 도산하면서 뉴욕과 시카고를 중심으로 은행들의 도산이

      가속화되어 감

   ③1932년까지 미국 내 20%로의 은행이 도산하고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Emergency Banking Act_은행 휴업

       조치)를 단행하게 됨

   ④그 이후에 연방예금공사(FDIC)가 설립되어 예금 보호를 시작(대공항에서 중앙은행의 역할과 그 한계 포스팅

      참조)

 

 

 

 

[3.금본위제와 유동성 공급의 제한]

   대공황 당시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적극적으로 공급하지 못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금본위제였는데, 연방준비제도는 통화량 증가가 금 보유량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것 때문에 과감한 정책을 시행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외국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등 유동성을 더욱 경색시키는 조처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경기 침체를 넘어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외국 자본 유출(Foreign Capital Outflow)에 대한 대처

   자본 유출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여 본국으로 이동하거나 다른 시장으로 이동 하는 현상으로 환율

   급등(자국 통화 가치의 하락), 금융시장의 불안, 경제 침체 등을 불러옴

   ①기준금리 인상으로 자국과 해외 금리 차이를 조절할 수 있으나 급격한 금리 인상은 경기 침체를 초래할 수 있음

   ②외환시장 개입(달러 매도 & 외환보유고 활용)

   ③유동성 공급 및 금융시장 안정화 조치 2008년 미국 연준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

   ④재정건전성 강화(재정적자 축소)

   ⑤경쟁력 강화(구조개혁)를 통한 경제 체질 개선 구조 개혁은 시간이 오래 걸리며 단기적인 효과는 제한적임

   ⑥자본 유출 규제(Capital Control) 도입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회수에 일정한 제한을 두거나,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 반대로 투자자의 신뢰를 낮추고, 장기적으로는 더 큰 자본 유출로 이어질 수 있음

   ⑦국제 금융기구 및 국가 간 협력강화 IMF(국제통화기금). , IMF는 긴축정책을 요구함으로 경제회복에 많은

       부담을 줄 수 있음

 

 

 

 

[4.현대 금융위기에 대한 시사점]

   대공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금융 시스템이 위기에 처했을 때 중앙은행이 유동성 공급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 연준은 대공황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과감한 양적 완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금융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중앙은행의 대응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은 지속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통화량 조절을 넘어, 금융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함께 고려해야 보아야 합니다.

 

양적 완화 정책(Quantitative Easing, QE)

   중앙은행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하여 채권을 대량으로 매입하는 통화정책으로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하

   하여 경기 부양을 시도하지만 기준금리가 0%에 도달하면 금리 인하만으로는 경기 부양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추가적인 조치로 중앙은행이 직접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을 말한다.

   중앙은행이 국채나 회사채 등을 매입하여 시중은행에게 유동성(현금)을 공급하여 기업과 가계에 쉽게 유동성이

   공급되는 방식으로 채권 가격 상승과 금리(수익률) 하락을 이끌어서 투자, 소비, 고용 증가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되면서 투자 심리가 개선되고 통화 가치가 하락하여 환율이

   낮아져서 수출기업이 유리해지는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인플레이션 위험이 있고 자산 거품이 발생하며 과도한 부채를 지게 될 위험에 노출이 되며 QE

   종료할 때 출구 전략에 어려움이 있어 경제 충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공황은 단순한 경제 위기가 아니라 중앙은행의 정책적 실책이 경제 시스템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동성 공급 부족은 금융 시장을 경색시키고 실물 경제에 장기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앙은행은 위기 상황에서 보다 신속하고 과감한 정책을 시행해야 하며, 단기적 대응뿐만 아니라 금융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기적 전략을 마련해야 합니다. 대공황의 사례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현대 금융 시스템 운영에 있어서도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다음 포스팅은 금융기관의 붕괴와 중앙은행의 대응 분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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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공황(Great Depression)은 단순한 경제 위기를 넘어서 근본적으로 전 세계 경제 시스템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킨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1929년 월스트리트 주식시장의 붕괴를 시작으로 하여 도미노와 같이 미국 경제 전체가 무너졌고, 이는 곧바로 전 세계적인 금융 혼란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가 단순히 시장 경제의 실패로만 설명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우리는 던져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나온 과거의 발자취를 알고 있는 현시대의 사람으로서 중앙은행들의 정책 결정이 대공황의 전개와 확산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분석하여 보면 글로벌 금융 시스템이 현재까지도 어떠한 영향을 받고 있으며 지금은 어떠한 원리로 작동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대공황 당시 중앙은행의 국제적 영향과 그 결과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WALL Street
월스트리트

 

 

 

목차 : 1. 중앙은행의 금본위제와 유동성 부족, 대공황을 심화시킨 원인

          2. 중앙은행 간 정책 조율 실패로 글로벌 확산의 가속화에 따른 국제적 영향

          3. 보호무역주의와 중앙은행의 소극적 대응

          4. 대공황 이후의 변화, 중앙은행의 역할 재정립

 

 

 

 

[1.중앙은행의 금본위제와 유동성 부족, 대공황을 심화시킨 원인]

   대공황이 시작되기 전, 세계 경제는 금본위제(Gold Standard)하에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이는 각국 통화가 금으로 교환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하지만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금융 시스템이 불안정해졌고, 많은 국가가 금 유출을 막아서 금본위제를 유지하려는 정책으로 금 보유량을 유지하기 위해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올리고 통화 공급을 제한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정책과 영국은행(Bank of England)의 금본위제 집착이 글로벌 경기 침체를 더욱 악화시킨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금본위제의 역사(Gold Standard)

17세기 이후 유럽에서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금과 은을 기반으로 한 통화 시스템이 발전을 이루게 되었음

1717년 영국의 아이작 뉴턴(Sir Isaac Newton)이 영국의 조폐국장이었는데, 금과 은의 가치를 잘못된 비율로

    (1:15.2) 설정하여 금이 화폐의 중심이 되는 계기가 되었음

19세기 동안 영국이 세계적인 경제 강국이 되면서 파운드-금본위제가 글로벌 표준이 되었으며 독일(1871),

   프랑스(1878), 미국(1879), 일본(1897)이 금본위제를 도입하는 데 이 시기를 클래식 금본위제(Classical

   Gold Standard)라고 불렸음

대공황 후 금본위제가 폐지되기 시작하여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새로운 국제 통화 체제가 필요해짐으로 1944

    미국 주도로 브레튼우즈체제(Bretton Woods System)가 출범하는데, 이 체제는 미국 달러만 금과 교환 가능하고

    다른 통화들은 달러와 연동이 되는 체제로 금 본위제에서 달러 본위제(Dollar Standard)로 전환이 됨

미국은 베트남 전쟁과 재정적자가 누적되면서 금1온스=35달러로 유지하던 고정환율에서 변동환율제(Floating

    Exchange Rate)로 전환이 되는 데 이것을 1971년 닉슨 쇼크(Nixon Shock)라고 하고 이로써 금본위제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됨

현재는 금을 가치 저장 수단(Safe Haven Asset)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

 

 

 

 

[2.중앙은행 간 정책 조율 실패로 글로벌 확산의 가속화에 따른 국제적 영향] 

   대공황 당시 각국 중앙은행들은 자국 시장의 금융 안정만을 우선시하고, 국제적인 협력을 등한시하여 더욱더 어려운 시기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1931년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은행들이 연쇄적으로 붕괴하면서 유럽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았지만,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주요 중앙은행들은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에 나서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 연준은 국제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달러 유동성을 제공하지는 않고 대신, 보호주의적 금본위제 정책을 고수하며 글로벌 경기 침체를 더욱 심화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현대 경제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제공하는데, 글로벌 금융 위기 시 중앙은행 간 공조가 필수적인 요소임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공황 당시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결정의 배경에 대한 포스팅 목차 3번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금융

   시스템 불안과 은행 폐쇄 참조

금본위제의 장점과 단점

장점은 환율이 안정적이고 인플레이션을 방지(정부 마음대로 돈을 찍을 수 없음)하며 신뢰성 높은 통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됨

단점은 경제 위기 시 대처가 어려움(유동성 공급에 어려움), 금의 공급이 경제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각국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부족함

 

 

 

 

[3.보호무역주의와 중앙은행의 소극적 대응]

   대공황이 심화하면서 각국 정부는 자국 산업만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채택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30년 미국의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입니다. 이 법안은 수입 관세를 대폭 인상하여 미국 내 산업을 보호하려는 목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전 세계 무역량이 60% 이상 감소되어 국제 무역을 위축시켰으며 영국프랑스독일 등도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블록 경제(Block Economy)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중앙은행들의 대응 또한 미흡하기만 했습니다. 미국 연준은 국내 경제가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긴축 통화 정책을 유지했고, 유럽 중앙은행들도 금본위제 유지에 집착하여 금리 인하와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을 채택하지 않았고 이러한 정책들은 결국 대공황을 더욱 장기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

하원의 월리스 스무트(Willis Smoot)와 상원의 리드 홀리(Reed Hawley)가 주도하여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하는 법안으로 허버트 후버대통령의 서명으로 법안이 발효됨

20,000개의 수입품의 평균 관세율이 40% 이상 상승됨

추지는 미국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곡물, 축산물 등의 관세를 높이려는 법안이었으나 논의 과정에서 제조업

   제품까지 포함되어 거의 모든 수입품에 높은 관세가 부과되었고 다른 나라들은 보복관세(Retaliatory tariffs)

   맞대응을 하여 무역 전쟁이 촉발됨

④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하여 무역협정법(Reciprocal Trade Agreements Act, RTAA)을 통해 양자 간 무역 협정을

    체결하고 관세를 점진적으로 낮추기 시작하여 자유무역을 회복함

이후 1947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1995WTO(세계무역기구)등의 자유 무역 체제가 등장

    하게 됨

 

 

 

 

[4.대공황 이후의 변화: 중앙은행의 역할 재정립]

   대공황의 심각성을 경험한 각국은 중앙은행의 역할을 재정립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변화는 1933년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단행한 금본위제 폐지와 뉴딜 정책(New Deal)을 들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연준은 유동성을 적극 공급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어서, 이후 중앙은행의 역할이 단순한 통화 관리에서 경제 안정과 금융 위기 대응으로 그 역할이 확대되었습니다. 또한,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_별표의 금본위제 역사 참조) 도입을 통해 국제 금융 시스템이 보다 유연한 방향으로 전환되었으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 같은 국제 금융 기구들이 출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공황은 중앙은행의 역할이 단순한 통화 정책 집행을 넘어선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중앙은행들은 금본위제 유지와 자국 중심적 정책으로 인해 위기를 악화시켰으며, 국제적인 협력 부재가 경기 침체를 장기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수를 계기로 이후 중앙은행의 역할이 변화하였고, 글로벌 금융 위기 대응 능력이 강화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경제 위기 시 중앙은행들의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고려할 때, 대공황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향후 글로벌 경제가 새로운 위기에 직면했을 때, 각국 중앙은행들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보다 유기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 다음 포스팅은 대공황을 통해 본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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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 동상

 

 

 

 

   대공황(1929-1939)은 세계 경제사에서 가장 극적인 경제적 붕괴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대공황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은 경제 위기 대응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했으며, 그 정책적 한계 역시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금융 시스템을 안정시키고 경기 회복을 촉진해야 했으나, 여러 가지 제약과 정책적 오류로 인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대공황 당시 중앙은행의 역할과 한계를 분석하고, 현대 경제 정책에 주는 교훈을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특히, 이전 포스팅에서 다룬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 실패와 연결하여 금융 시스템의 문제를 더욱 심층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목차 : 1. 중앙은행의 금융 안정 정책과 그 한계

          2. 중앙은행의 금본위제 제약과 통화 정책의 오류

          3. 중앙은행의 정책에 따른 은행 파산과 금융 시스템 붕괴

          4. 중앙은행의 정책 변화와 대공황 극복 노력

 

 

 

 

 

[1.중앙은행의 금융 안정 정책과 그 한계]

   1929년 증권시장의 붕괴되면서 금융 시스템의 혼란과 마비가 가속화되어 가는 가운데 중앙은행은 통화 공급과 신용 조절을 통해 금융 시장을 안정시켜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연방 준비제도(Fed)를 포함한 주요 중앙은행들은 금융 안정보다 금본위제를 유지하는 데 더 집중했으며 오직 금 유출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금리를 인상하는 정책을 고수했으나, 이는 신용 경색과 은행 파산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당시 중앙은행의 긴축 정책은 통화량 감소를 불러왔으며, 이는 실물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여서 은행 대출이 계속 축소되어서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는 곧바로 생산 감소와 대량 실업으로 이어져서 결국, 중앙은행의 금융 안정 노력은 오히려 경기 침체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을 지난 과거를 통해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연방 준비제도(Federal Reserve, Fed)

1913sus 연방 준비법(Federal Reserve Act)에 의해 설립된 미국 경제의 통화금융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

    하는 핵심 기관

1907년 뉴욕 주식시장의 폭락으로 인해 Bank Run이 발생하였고 이것은 은행들의 파산으로 이어져서, 정부 차원

    에서 이런 금융 위기를 막을 기관이 필요하다는 요구에 의해 설립됨

은행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립된 기구임

구조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 FRB), 12개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s), 공개

    시장위원회(Federal Open Market Committee, FOMC)3각 체재로 구성됨

역활은 통화정책 시행(금리와 통화량), 금융 안전성 유지(위기 대응), 은행 감독 및 규제, 달러화의 안정성과 국제

    금융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

 

 

 

[2.중앙은행의 금본위제 제약과 통화 정책의 오류]

   대공황 당시 대부분의 국가는 금본위제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것은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에 상당한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금본위제하에서의 중앙은행은 금 보유량에 따라 통화량을 조절해야 했으므로, 경기 침체 상황에서도 통화량을 확대하기가 어려운 구조입니다. 그래서 1931년 영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한 후에도 미국과 프랑스는 금 유출을 방어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단행했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글로벌 신용 경색을 더욱 악화시키는 조치였습니다.

특히 미국 연준은 1930년과 1931년 사이에 은행 폐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통화 공급을 주저했습니다. 이는 중앙은행이 적절한 유동성을 공급하지 않음으로써 신용 시장은 더욱 위축되었고, 기업과 개인의 경제 활동이 크게 둔화하여서 경기 회복이 지연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3.중앙은행의 정책에 따른 은행 파산과 금융 시스템 붕괴]

   대공황 동안 대규모의 은행 파산이 발생했으며, 이러한 대규모 은행 파산은 경제 위기 나타나는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입니다. 1930년부터 1933년까지 미국에서는 수천 개의 은행이 도산했으며, 예금 인출 사태(bank run)가 빈번하게 발생했으나 중앙은행은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지급준비율을 높이는 등 금융 불안을 가중하는 정책만을 일괄되게 펼쳤습니다.

결국 은행 파산이 지속되면서 신용 경색은 더욱 심화하였고, 이는 소비와 투자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져서 금융 시스템은 붕괴되고 실물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대량 실업과 기업 도산이 급격히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4. 중앙은행의 정책 변화와 대공황 극복 노력]

   1933년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금융 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은행 휴업 조치를 단행하여 금융 시스템을 재정비했고, 이후 금본위제를 부분적으로 폐지함으로써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자유도를 높이는 계기를 조성했으며 또한, 뉴딜 정책을 통해 정부 지출을 확대하면서 경제 회복을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했습니다.

이에 발맞추어 연준 역시 1933년 이후 금리를 인하하고 통화 공급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였고, 이는 금융 시장의 신뢰 회복에 기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대공황이 이미 깊어진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중앙은행의 초기 대응 실패를 더욱 부각시킬 수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과거를 고찰하여 보면 중앙은행이 금융 위기 초기에 신속한 대응을 하지 않을 경우, 경제 회복이 더욱 지연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는 것을 교훈으로 삼지 않으면 역사의 악순환은 반복될 것입니다.

 

은행 휴업 조치(Bank Holiday)

193336일 이후 모든 은행의 영업을 4일간 중단한 조치(실제적으로는 10일간)

이 기간에 긴급은행법(Emergency Banking Act, 193339)이 통과되어 연방준비제도(Fed)가 은행을 정밀

   조사하여 재무 건전성 평가 후 건전한 은행만 문을 열도록 허가하는 조치로 은행들이 재개장했을 때 뱅크런이

   아닌 다시 예금을 맡기는 현상이 일어나도록 함

19336월에는 은행법(Glass-Steagall Act)이 통과되어 예금 보호 기관인 FDIC(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가 설립되어서 예금자를 보호하고 은행이 무너지지 않도록 보증하는 역할을 하게 됨.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New Deal)의 시작점으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시행한 첫 번째 성공적인 조치라고

    평가되고 있음.

 

 

 

 

 

 

대공황 당시 중앙은행의 역할은 금융 시스템을 안정시키고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이 핵심적인 요소였지만, 당시의 정책적 제약과 대응 실패로 인해 경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금본위제의 제약, 소극적인 통화 정책, 은행 시스템 붕괴에 대한 미흡한 대응 등은 중앙은행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 경제 정책은 경기 침체 시에 보다 적극적인 중앙은행 개입과 유동성 공급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공황의 교훈을 통해 금융 시스템을 더욱 견고하게 구축하고, 향후 경제 위기에 대비할 필요가 있으며 이전 포스팅에서 다룬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 실패와 함께, 중앙은행의 기능과 그 한계를 종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현대 경제 정책 수립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 다음 포스팅은 대공황과 글로벌 경제, 중앙은행의 국제적 영향 입니다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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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중앙은행
오스트리아 은행의 모습

 

 

 

 

   대공황(1929-1939)은 현대 경제사에서 가장 심각한 금융 위기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당시의 중앙은행 정책 결정이 경제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많은 논란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금리를 낮추어 경기 부양을 유도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지만, 대공황 당시의 여러 국가들의 중앙은행은 오히려 금리를 인상하는 상방 된 결정을 내렸는데, 이러한 정책이 나온 배경과 그로 인한결과를 분석함으로써, 현대 금융 정책에 주는 교훈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목차 : 1.중앙은행의 금본위제와 통화 정책의 제약

          2.대공황 초기 중앙은행의 정책 오류

          3.중앙은행의 금리 인상과 금융 시스템 불안으로 인한 은행 폐쇄

          4.1930년대 후반의 중앙은행의 정책 변화와 교훈

 

 

 

 

[1.중앙은행의 금본위제와 통화 정책의 제약]

   1920년대와 30년대 초반 대부분의 국가들은 금본위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금본위제는 화폐 가치를 금과 연동시키는 시스템으로, 이에 따라 각국의 중앙은행은 통화량을 금 보유량에 맞추어 제한해야 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대공황 초기에, 금융 시장의 혼란과 신용 경색으로 인해 각국의 금 보유량이 감소하면서 대대적인 통화량 축소 압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앙은행들은 금 유출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습니다. 특히 영국이 1931년 금본위제를 포기하면서 미국과 프랑스는 자국의 금 유출을 막기 위해 더욱더 공격적으로 금리 인상 정책을 펼쳤고, 이러한 정책은 통화 긴축을 초래하여 경기 침체를 더욱더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국은 1차 세계대전 동안 전비 조달을 위해 금본위제를 일시 중단했다가 1925년 원스턴 처칠의 결정으로 금본위제로 복귀했으나 문제는 전쟁 전의 금 가치를 유지하려던 것이 파운 드화가 과대평가되고 이러한 상황에서 대공황이 시작되어 영국은 석탄철강조선업이 침체 하고 실업률이 급등한 가운데 금본위제로는 통화량을 조절할 유연성이 없어지므로 영란은행 (Bank of England)에서 금 유출이 심각해져서 결국 금본위제를 포기하여 파운드화는 가치 하락을 하고 영국의 수출 경쟁력은 높아지는 효과를 낳아 경기 부양에 성공할 수 있었음. 영국의 금본위제 포기는 대공황 시대의 경제적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2.대공황 초기 중앙은행의 정책 오류]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1929년 증권시장 붕괴 이후에 은행 시스템을 안정화시키고 유지하는 데 실패하게 됩니다. 당시에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우려하여 1928년부터 점진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고 있었던 상황으로, 이는 금융 시장의 유동성을 크게 위축시켰습니다. 그런데,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된 후에도 연준은 통화량 확대보다 금 보유량 유지에만 집착을 하여서 그 결과로 대량의 은행들이 파산하는 결과를 발생시켰습니다.

   프랑스의 중앙은행 역시 1920년대 후반 금 보유량을 급격히 증가시키면서 글로벌 유동성을 흡수했었으나 이는 전 세계적으로 신용 경색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어서, 국제 금융 시장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결국 프랑스는 자국의 금 보유량을 방어하기 위해 금리를 유지하는 정책을 펼치고, 이는 경기 회복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3.중앙은행의 금리 인상과 금융 시스템 불안으로 인한 은행 폐쇄]

   금리 인상은 단순히 경기 위축만 초래한 것이 아니며, 은행 시스템 자체의 불안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대공황 당시 미국에서는 1930년부터 대규모 은행 폐쇄가 이어졌는데, 당시 연준은 지급준비율을 더욱 높이고, 부실 은행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지원을 제공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결과로 은행 간 신뢰는 급격히 하락하고, 예금 인출 사태(bank run)만 빈번하게 발생하도록 했습니다.

   특히 1931년 오스트리아의 크레디트안슈탈트(Credit-Anstalt) 은행의 파산은 유럽 금융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에 따라 독일, 영국 등 주요 국가들은 금융 불안이 확산되었으며, 각 국의 중앙은행들은 외환시장을 방어하기 위해 다시금 금리를 인상하는 악순환을 반복했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실물 경제의 급격한 위축을 가져왔으며, 대량 실업과 기업 도산을 야기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크레디트안슈탈트 은행은 1855년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설립한 중앙유럽 최대의 은행으로 산업 및 금융 투자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29년 오스트리아의 방크 페어라(경쟁은행)를 인수하였으나 방크 페어라의 부실 자산으로 부채가 급증한 상황에서 대공황이 시작되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져서 1931511일 도산을 공식발표하게 되었고 이것은 오스트리 아 독일 영국으로 이어지는 연쇄 금융위기를 촉발하여 대공황을 더욱 심화시키게 되었음.

 

 

 

 

[4.1930년대 후반의 중앙은행의 정책 변화와 교훈] 

   1933년 미국은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경제 정책의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금본위제를 부분적이나마 폐지하고, 뉴딜 정책을 통해서 정부의 지출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경제 회복을 도모했습니다. 이에 따라서 연준 역시 1933년 이후 금리를 인하하고 통화 공급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면서 경기 부양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금융 시스템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미국 경제가 점진적으로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대공황이 심화된 주요 원인의 하나가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 실패였음이 명확해졌습니다. 이후 20세기 후반부터 중앙은행들은 경기 침체 시 적극적인 통화 완화 정책을 펴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대공황 당시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은 경제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는데, 금본위제의 제약과 금융 시스템의 불안이 결합되면서, 당시의 정책 결정자들은 하나같이 경기 부양보다는 금 보유량 방어에만 더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러한 결과로 통화 긴축이 심화되었고, 이는 금융 시장의 붕괴와 실물 경제 침체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는 오늘날 중앙은행이 경기 침체 시 적극적인 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 정책을 펼치는이유를 설명하는 중요한 교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단순한 금리 조정보다 훨씬 더 중요한 요소임을 시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공황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의 경제 정책들은 보다 신속하고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다음 포스팅은 대공황에서 중앙은행의 역할과 그 한계입니다.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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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금 보관소
금본위제(Gold Standard)

 

 

   1929년 대공황은 단순한 경제 불황이 아니라 미국과 전 세계 경제를 붕괴로 몰고 가는 거대한 위기를 제공하였다. 대공황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이하 연)의 정책 실패가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핵심 요소로 지목된다. 연준이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초반에 취한 조치들은 경제를 회복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금융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번 글에서는 대공황의 시작과 연준의 정책 실패를 중심으로, ¹통화 긴축 정책, ²유동성 공급 부족, ³금본위제 유지, 금융 시스템 붕괴 방치라는 네 가지 핵심 요소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고자 합니다.

 

 

 

 

목차 : 1.중앙은행의 실패, 통화 긴축정책인 금리 인상으로 위기를 악화

          2.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실패, 은행들의 붕괴를 초래

          3.중앙은행의 금본위제 유지, 통화정책의 유연성 부족을 초래

          4.중앙은행의 금융 시스템 붕괴 방치, 은행과 경제를 더욱 악화시킨 요인

 

 

 

 

[1.중앙은행의 실패, 통화 긴축정책인 금리 인상으로 위기를 악화]

   1920년대 후반, 미국 경제는 과열된 주식시장과 신용 대출 증가로 인한 거품이 형성되고 있었다. 이에 대응하여 연준은 1928년과 1929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상하였다. 19298, 연준은 재할인율을 6%로 올리면서 신용 경색을 초래하여, 이는 기업과 개인의 차입 비용을 증가시켜는 결과로 경제 활동을 둔화시켰다. 주식시장 투자자들은 마진 거래로 인해 대출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금리 인상은 이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었고 결국 192910주식시장 붕괴(블랙 화요일)를 초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금리 인상은 주식시장 붕괴 이후에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쳤는데, 투자자들은 신용 경색으로 인해 자금을 조달하지 못했고, 기업들은 대출을 받지 못해 투자와 생산을 줄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실업률이 급등하고 소비가 위축되면서 경제 전반이 침체에 빠졌다. 연준이 1929년 시장 붕괴 이후 빠르게 금리를 인하하고 유동성을 공급했다면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겠지만, 오히려 긴축 정책을 유지하면서 경기 침체를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했다.

 

 

 

 

[2.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실패, 은행들의 붕괴를 초래]

   대공황 초기, 미국의 금융 시스템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었다. 은행들은 예금 인출 요구가 급증하면서 뱅크런(bank run)에 직면했지만, 연준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아서 1930년부터 1933년까지 9,000개의 은행이 파산했는데, 이는 전체 은행의 약 40%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은행이 도산하면서 기업과 개인은 예금을 잃었고, 신용 경색은 더욱더 심화되면서 경제 활동도 더욱 위축하게 되는 악순환을 걷게 되었다.

연준이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하지 않은 이유는 당시 '자유방임주의'적인 경제 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연준은 시장이 스스로 조정될 것이라는 믿음 아래 은행들을 구제하는 대신, 통화 공급을 줄이고 금리를 높이는 긴축 정책을 지속했으나 이로 인해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고 경제 회복이 더욱 어려워졌다.

 

 

 

 

[3. 중앙은행의 금본위제 유지, 통화정책의 유연성 부족을 초래]

   당시 미국은 금본위제(Gold Standard) 체제하에 있었으며, 이는 연준이 위기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통화 정책을 조정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 요인으로 작용했다. 대공황이 심화되면서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통화 공급을 늘려야 했지만, 금본위제 아래에서는 달러 발행량이 보유한 금의 양에 의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1931년 영국은 금본위제를 포기하여 전 세계적으로 금 유출이 가속화되는 원인이 되어서, 미국은 금 유출을 막기 위해 방법으로 금리를 인상하는 정책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는 이미 침체된 경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했다.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었고, 실업률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경제는 더 깊은 불황에 들어가도록 했다. 결국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금본위제를 부분적으로 폐지하고 달러 평가절하 조치를 단행하면서 경제 회복의 기틀이 마련될 수 있었다.

 

 

 

 

[4. 중앙은행의 금융 시스템 붕괴 방치, 은행과 경제를 더욱 악화시킨 요인] 

   1930년대 초반, 미국 경제는 은행의 도산과 기업의 파산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준은 은행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구제하지 않았아서, 결국에는 대규모 금융 붕괴를 초래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32년 후버 대통령은 긴급구제금융공사(Reconstruction Finance Corporation, RFC) 설립하여 은행과 기업을 지원하려 노력했지만, 연준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한 후에, 은행 시스템을 안정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은행 휴업(Bank Holiday) 조치를 단행하고, 연준의 통화 정책을 변경하는 등의 개혁을 추진하였고, 이후 예금보험제도(FDIC)가 도입되면서 은행 시스템은 점차 안정을 되찾았지만,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은행들은 이미 파산한 뒤였다.

 

 

 

 

 

   1929년 대공황은 단순한 경기 침체라고 말할 수 없으며 금융 시스템 전체가 붕괴하는 대규모 경제 위기이었으나 연준은 잘못된 정책들을 추진하여 실패를 하므로 이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주식시장의 붕괴 이후에도 연준은 긴축 정책을 계속해서 유지했고, 은행 시스템의 붕괴를 방관했으며, 금본위제를 계속해서 사수하면서 통화 정책의 유연성을 제한했는데, 이러한 실책들은 경제를 빠르게 회복시키기보다 오히려 불황을 장기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공황의 교훈은 중앙은행이 위기 시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후 2008년 금융위기 때 연준은 1929년과는 반대로 금리를 인하하고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며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신속히 대응했다. 이는 대공황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보다 효과적인 중앙은행의 역할을 수행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중앙은행들은 이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위기 상황에서 보다 신속하고 적극적인 대응을 하며 경제 안정을 유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 다음 포스팅은 대공황 당시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결정의 배경입니다.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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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9년 대공황은 20세기 경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며, 그 여파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이 경제적 위기는 단지 한 나라의 문제를 넘어, 국제적인 금융 시스템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대공황의 원인과 그 전개 과정은 오늘날의 경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교훈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발전되고 성숙한 금융 시스템을 만들어 나아가도 해야 합니다.

 

1920년대 뉴욕
1920녀대 뉴욕의 모습

 

 

 

 

목차 : 1.대공황 전의 경제 상황, 1920년대의 번영

          2.대공황 전의 경제 상황, 과잉 생산에 따른 소비의 불균형

          3.대공황 전의 경제 원인, 주식 시장의 과도한 투기

          4.대공황 전의 원인 분석, 정부와 중앙은행의 대응 실패

 

 

 

 

[1.대공황, 1920년대의 번영] 

   1920년대 미국은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렸습니다. 이는 ‘Roaring Twenties’ 또는 광란의 20이라는 용어로도 알려져 있는데, 혁신적인 기술 발전, 대규모 산업화, 그리고 주식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들이 특징적입니다. 자동차, 가전제품, 그리고 새로운 소비재들이 시장에 풀리면서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 것이 결국에는 대중적인 소비를 촉진시켰습니다. 특히, 금융 시장의 성장은 상당히 두드러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주식에 투자했고, 이를 위해 신용을 이용한 대출도 급증했습니다. 주식시장의 급격한 성장은 사람들에게 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지만, 동시에 경제적인 과잉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의 경제 성장은 표면적으로 명백하게 드러난 번영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불안정한 요소가 자리 잡고 있었고, 이는 나중에 심각한 금융 위기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2.대공황, 과잉 생산에 따른 소비의 불균형]

   1920년대 미국 경제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과잉 생산에 따른 소비의 불균형입니다. 산업 생산량은 계속해서 증가했지만, 실제로 소비할 수 있는 시장은 고정되어 있습니다. 기술 발전과 생산성 향상은 많은 제품을 더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었지만, 소비자는 늘어나 생산량을 모두 소비할 수 있는 구매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농업 부문 또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192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특히 농민들이 과잉 생산으로 인한 가격 하락과 경제적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농업 시장의 불안정성은 도시 경제와도 연결되었으며, 과잉 생산 문제는 지속 불가능한 경제 모델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는 소비와 생산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서 결국 내수가 악화하였는데, 이는 부유층이 전체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소비 여력이 약한 중산층과 노동 계층이 쉽게 무너지면서 산업과 금융 부문에서의 부풀려진 자산 가격들이 붕괴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3.대공황 전의 경제 원인, 주식 시장의 과도한 투기]

   주식 시장의 과도한 투기는 대공황을 일으킨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됩니다. 1920년대의 주식시장은 대규모 투기의 장이었고, 많은 사람이 저축보다는 빠른 수익을 기대하며 주식 투기 뛰어들었습니다. 주식 가격은 실제 기업의 가치와는 무관하게 상승했고, 많은 사람이 신용으로 주식을 구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지렛대 효과라고 불리는 방식으로, 적은 자본으로 더 많은 주식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러한 투기적 흐름은 결국 경제 시스템의 불균형을 심화시켰고, 192910월의 블랙 선데이’와’와 ‘블랙 화요일로 이어지는 대공항(Great Depression) 서막을 알리는 주식 시장의 대폭락을 초래했습니다.

1025일 금요일과 26일 토요일까지 연이어 대량 매도가 발생하여 월요일에 열릴 주식 시장을 바라보며 일요일은 극심한 불안에 시달린 날입니다. 결국 월요일 다우 존스 산업평균지수는 13% 폭락(38.33포인트 하락)하고 화요일에는 12% 추가 폭락(30.57포인트 하락)하여 단 이틀 동안 자산가치가 25% 하락되는 주식 시장의 붕괴는 그 자체로 경제적 충격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금융 기관과 기업들에도 큰 타격을 입혔고, 이는 대공황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블랙 썬데이라는 용어Dust Bowl(대평원 지역의 대규모 모래 폭풍) 사건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으나 일부 경제사 학자들이 19291027일 블랙썬데이라고 부르면서 사용됨

 

 

 

 

[4.대공황의 원인 분석, 정부와 중앙은행의 대응 실패]

   대공황 전의 경제 상황과 그 원인은 정부와 중앙은행의 대응 실패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경제가 과열되었을 때 정부는 과잉 생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규제 정책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았고, 중앙은행은 금리를 조절하며 금융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데 실패했습니다.

1929년 경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는 금리를 급격히 인상하여 유동성을 긴축시키는 정책을 택하고 시장에 공급되는 자금 과잉을 막기 위한 조치를 하였지만, 연방준비제도는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하지 않아 1933년까지 미국 은행의 40%가 파산을 하였으며 사람들의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은 계속되었고 기업들은 대출받지 못하여 도산을 하게 되면서 오히려 경제에 더 큰 충격을 주어 신용 경색을 악화시켰습니다. 그 후,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들어선 후에야 예금자 보호정책(예금보험제도 FDIC)가 도입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중앙은행 정책은 금본위제(달러=)를 고수하여, 금 유출을 막기 위해 금 보유량과 관련된 제한적인 통화 정책(금리 인상)을 시행했으나 이러한 정책은 경제의 회복을 방해했으며, 결과적으로 대공황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이것도 1933년 루스벨트가 금본위제를 포기하면서, 달러의 평가절하가 이루어지면서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대공황은 여러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경제적 위기입니다. 1920년대의 경제 번영은 표면적으로는 눈부신 성과였지만, 그 이면에는 과잉 생산, 불균형한 소비, 그리고 과도한 금융 투기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주식 시장에서 발생된 거품은 대공황을 촉발한 결정적 사건이었고, 이에 따른 정부와 중앙은행의 대응 실패도 상황을 악화시키는데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대공황은 금융시장의 신뢰와 안정성을 크게 파괴하였으며, 이는 세계 경제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러한 교훈은 오늘날 금융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며, 경제 위기를 예방하기 위한 정책적 반성이 지속적으로 요구됩니다. 반성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의 부제는 앞으로 살펴볼 또 다른 경제 위기를 초래하는 단초가 됩니다. 여수룬은 기름지게 되면 과거의 교훈을 잊어버리고 흥청거리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경제적 불안정성을 줄이기 위한 국제적인 협력과 신중한 정책 조정이 필수적인 이유는 바로 이 역사적 사건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 덕분입니다.

 

 

 

 

 

 

< 다음 포스팅은 미국 중앙은행의 정책 실패와 대공황의 시작입니다.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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